발리는 어떻게 발리가 되었나
여행자를 위한 최소한의 발리사 — 망명 · 뿌뿌딴 · 마스터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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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 내리는 모든 비행기는 응우라라이 국제공항(Ngurah Rai International Airport)에 착륙한다. 응우라라이는 지명이 아니라 사람 이름이다 — 1946년 네덜란드 재침공에 맞서 싸우다 스물아홉 살에 부대원 전원과 함께 전사한 발리 게릴라 대장, 이 구스티 응우라 라이(I Gusti Ngurah Rai). 덴파사르 한복판의 잔디 광장은 왕족 1,000명이 흰 옷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리다. 그리고 당신이 묵을 리조트 단지의 위치는 1971년 프랑스 컨설팅 회사의 도면에서 정해졌다. 발리에서 역사는 박물관 유리장 안에 있지 않다 — 공항, 광장, 해변의 이름 속에서 매일 여행자와 스쳐 지나간다.
이 장은 그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알아보는 눈을 만드는 장이다. 학술적 통사가 아니라, 오늘의 발리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장면들만 골랐다. 다섯 장면이면 충분하다.
연표 — 발리 1,100년

첫 번째 장면 이전 — 두 개의 발리
마자파힛 이야기 전에 알아둘 것이 하나 있다. 발리에는 그 전부터 사람이 살았고 왕국이 있었다. 914년의 비문에 이름을 남긴 와르마데와 왕조가 뻬젱·베둘루(지금의 우붓 동쪽) 일대를 다스렸고, 고아 가자 석굴과 구눙 까위 왕묘가 그 시대의 유적이다 — 10장에서 걸어서 만날 수 있는 곳들이다.
1343년 자바의 대제국 마자파힛이 발리를 정복하면서 카스트와 관습법이 처음 들어왔다. 그런데 이 정복을 끝내 거부한 마을들이 있었다. 지금도 뜨루냔·뜽아난 같은 마을에는 카스트도, 와얀·마데식 이름도 없다 — 이들을 '발리 아가(Bali Aga)', 옛 발리 사람이라 부른다.
1527 — 대망명, 발리다움의 탄생
1527년, 이슬람 술탄국 데막이 마자파힛을 무너뜨렸다. 동남아 최대의 힌두 제국이 사라지는 순간, 그 왕족과 사제, 학자, 예술가, 장인 들이 바다를 건너 발리로 왔다. 한 문명의 엘리트가 통째로 이주한, 세계사에서도 드문 사건이다.
이때 건너온 목록이 곧 이 책의 목차다. 사원과 공양 체계(3장), 카스트와 이름(4장), 그림자극과 무용(10장), 건축 규범(10장), 210일 달력(15장) — 여행자가 발리에서 만나는 '발리다움'의 거의 전부가 이 배에 실려 있었다. 발리에 원래 있던 힌두 전통과 망명자들의 체계가 왕실의 후원 아래 융합되면서, 인도의 힌두교와도 다른 발리만의 힌두교가 정립된다.
이 시기의 인물 하나는 기억할 만하다. 망명 사제 당 향 니라르타(Dang Hyang Nirartha) — 발리 남부 해안을 돌며 절벽과 바위 위에 사원 자리를 정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울루와뚜(8장)와 따나롯(13장), 여행자가 노을 사진을 찍는 발리의 대표 절경 사원들이 그의 유산으로 여겨진다.
아홉 왕국 — 지역색의 기원
망명 왕조가 세운 겔겔 왕국은 16세기에 발리와 롬복, 동부 자바 일부까지 아우르는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다 1665년 내분으로 쪼개졌고, 이후 250년간 발리는 아홉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 경쟁했다.
이 분열이 남긴 것이 셋 있다. 첫째, 오늘날의 행정구역 — 9개 군(郡)의 경계는 아홉 왕국의 국경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다. 둘째, 지역색 — 왕국마다 궁정이 따로 있어 화풍·무용·요리·말씨가 따로 발전했다. 우붓 화풍과 바뚜안 화풍이 다르고(10장), 지역마다 의례가 미묘하게 다른 이유다. 셋째, 마을 자치 — 왕국이 잘게 쪼개질수록 마을(반자르)의 자기 결정권이 강해졌고, 그 전통이 지금도 국법과 나란히 작동한다(4장).
뿌뿌딴 — 흰 옷의 최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대부분을 17~18세기에 장악했지만, 발리만은 20세기까지 완전히 손에 넣지 못했다. 그 마지막 장면이 발리사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 뿌뿌딴(Puputan, '끝')이다.
1906년 9월 20일, 3,300명의 네덜란드군이 덴파사르의 바둥 왕궁에 접근했을 때, 왕과 왕족, 사제, 시종, 평민 약 1,000명이 흰색 의례복을 입고 끄리스 단검을 든 채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항복 대신 집단 자결이었다. 1908년 클룽쿵 왕가가 같은 방식으로 최후를 맞으며 발리 왕국의 시대는 끝났고,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가장 늦게 정복된 섬이 되었다. 광장의 학살 사진이 유럽에 전해지자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잿더미와 침묵 — 1963 · 1965
독립(1945)과 발리주 신설(1958)로 새 시대가 열리는 듯했지만, 1960년대의 발리는 낙원과 가장 거리가 멀었다. 1963년 아궁산이 100년 만의 대분화를 일으켜 약 1,500명이 죽고 동부가 잿더미가 됐다. 마침 100년 만의 대의례를 준비하던 브사키 사원이 용암을 비껴가 무사했던 것을, 발리인들은 신의 뜻으로 읽었다(11장).
2년 뒤에는 더 어두운 일이 왔다. 1965년 자카르타의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반공 학살은 발리에서 가장 참혹했다 — 당시 인구 200만의 섬에서 약 8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단위로 명단이 만들어졌고, 이웃이 이웃을 죽였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공식 조사도, 사과도, 교과서 서술도 없다.
1971 — 관광의 발명
그렇게 바닥까지 갔던 섬이 어떻게 연 700만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나. 답은 한 장의 도면이다. 1969년 세계은행의 권고로, 1971년 프랑스 컨설팅사 SCETO가 '발리 관광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핵심은 공간 분리 — 발리를 통째로 개방하는 대신 구역을 정해 관광을 가두는 설계였다.
- 누사두아 — 외국 자본의 5성급 리조트를 반도 하나에 격리. 오늘날 그 '리조트 단지 속 인공 낙원' 성격 그대로(8장).
- 사누르 — 중급 호텔의 잔잔한 해변. 지금도 가족 여행자의 동네다(9장).
- 꾸따 — 백패커와 서퍼의 저예산 구역. 훗날 클럽 거리로 진화(7장).
- 우붓 — 문화 관광 구역. '예술 마을' 우붓의 공식 지위가 여기서 시작됐다(10장). 1972년 응우라라이 공항이 본격 가동되며 숫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1970년 2만 5천 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은 1995년 120만이 됐고, 한 세대 만에 발리의 산업은 농업에서 관광으로 뒤집혔다. 당신이 이 책에서 고르게 될 베이스 — 누사두아냐 꾸따냐 우붓이냐 — 는 사실상 1971년 도면 위의 선택이다.
충격과 회복의 반복 — 2002년부터 오늘까지
그 후의 발리사는 충격과 회복의 사이클이다. 2002년 꾸따의 클럽 두 곳에서 터진 폭탄 테러로 202명이 죽었고(2005년 2차 테러까지 222명), 관광객이 절반으로 꺾여 회복에 7년이 걸렸다. 2010년대의 대호황은 2019년 63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2020년 코로나 국경 봉쇄로 발리 경제는 -9.3% 역성장 — 관광 의존의 대가를 온몸으로 치렀다. 그리고 2025년, 외국인 방문객 695만 명으로 사상 처음 2019년 정점을 넘어섰다. 지금 당신이 만나는 발리는 이 회복의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다(과잉관광이라는 새 고민과 함께 — 6장).
역사를 걷는 곳 — 현장 연결
| 장소 | 무엇이 있었나 | 가는 법 |
|---|---|---|
| 고아 가자·구눙 까위 | 마자파힛 이전, 와르마데와 왕조의 석굴과 왕묘 | 10장 우붓과 중부 |
| 뜨루냔·뜽아난 | 마자파힛을 거부한 발리 아가 마을 | 11·12장 |
| 끄르따 고사 (클룽쿵) | 겔겔~클룽쿵 왕국의 재판소, 까마산 천장화 | 11장 동부 |
| 라빵안 뿌뿌딴 (덴파사르) | 1906 바둥 뿌뿌딴 현장, 매년 9/20 추모 | 9장 사누르·덴파사르 |
| 뿌뿌딴 기념탑 (클룽쿵) | 1908 마지막 뿌뿌딴 | 11장 동부 |
| 마르가라나 기념 공원 (따바난) | 1946 응우라라이 부대 전멸지 | 13장 서부 |
| 브사키 사원 | 1963 분화를 비껴간 '어머니 사원' | 11장 동부 |
| 누사두아 리조트 단지 | 1971 마스터플랜의 실물 | 8장 부킷 반도 |
주요 출처
최종 조판 시 권말 참고문헌으로 통합.
- 위키백과 — History of Bali · Puputan · Dutch intervention in Bali (1906/1908) · Battle of Margarana · 1963 eruption of Mount Agung · 2002 Bali bombings · Tourism in Bali · Bali Aga
- 학술 — Vickers A., Bali: A Paradise Created (2012) · Geertz C., Negara (1980) · Robinson G., The Dark Side of Paradise (1995) · Wiener M., Visible and Invisible Realms (1995) · Picard M. (1996)
- 공식 — BPS Bali (관광 통계) · Museum Bali · Nationaal Archief (네덜란드 측 1906·1908 기록)
- 다큐멘터리 — Oppenheimer J., The Look of Silence (2014) 다음 장 예고 — 매일 아침 길 위에 놓이는 600만 개의 꽃 접시. 신들의 섬의 작동 원리, 발리 힌두 입문. (3장)